우주를 다스리는 7가지 법칙 by 마크 파시오
이것은 자연 법칙의 일곱 가지 일반 원칙입니다. 헤르메틱 원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메틱 전통이 그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자연 법칙이 밀봉(정해져서 바뀔 수 없음)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법칙 역시 밀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법칙은 밀봉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변경할 수 없는 원칙들로 구속되어 있습니다. 이 법칙들은 변경될 수 없는 상태로 작동 중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밀봉되어 있습니다.
헤르메스 일곱 가지 일반 원칙.
이것들은 정신주의(유심론), 상응의 원리, 진동, 극성, 리듬, 원인과 결과(큰 원리이며 이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그리고 성별입니다. 각각의 원리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지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림/자막) 이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은 헤르메티쿰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박물관은 1625년에 출판된 연금술, 헤르메틱 원리, 자연 법칙 등을 담은 책입니다. 이런 원리들은 사람들을 노예처럼 다루기 위해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보들은 빛으로 나와 완전히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우리 사회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1. 정신주의 원리(유심론)는 만물이 실제로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원칙을 말합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모든 일은 앞서오는 정신적인 상태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말입니다.
어떤 것이든 존재하기 위해서 먼저 생각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물리적 현실이 형성됩니다.
우주 자체는 창조주의 정신적 구성물입니다.
생각은 사물과 사건의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생각은 사물과 상황을 창조합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마법처럼 스스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먼저 나타납니다. 생각은 우리의 존재 상태와 여기 지구에서의 경험의 질을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책임져야 하며, 생각 프로세스가 행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박힌 특정 신념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이것들은 마치 프로그램처럼 작동됩니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행동을 주도합니다. 행동은 마법처럼 갑자기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변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감정이 행동의 뒤에 숨어있는 원동력입니다. 생각이 변할때 현실이 변할 것입니다.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당신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각 방식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요구 사항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신주의 원리, 유심론입니다.
2. 상응의 원리는 위의 것은 아래와 비슷하거나 같다고 말합니다. (As above, so below).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거울"입니다. 위는 아래와 같다, 아래는 위와 같다.
이 경우 위는 대우주를 말합니다. 매우 큰 것들의 법칙을 의미합니다.
우리 자신 밖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대우주는 매우 큽니다. 모든 것의 총체이며 소우주는 매우 작거나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단위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반영입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도 가게 됩니다.
우주는 실제로 홀로그래픽 시스템입니다.
홀로그램은 2차원의 이미지입니다. 레이저를 통과시키면 3차원의 이미지를 투영합니다. 평면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3차원 이미지를 투영합니다. 우주를 홀리스틱(wholistic; 전체적) 홀로그램으로 부르는 이유는 우주의 모든 단계에서(완전체와 부분) 프랙탈적 혹은 자기유사적이기 때문입니다. (홀로그램 설명: 홀로그램 이미지를 4개로 잘랐을 경우 각각의 이미지가 1/4의 부분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가 1/4의 저하된 해상도로 존재합니다. 아무리 작게 잘라도 각각의 조각은 전체의 홀로그램 이미지를 내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유사합니다.우리의 우주는 홀로그래픽인 이유는 모든 존재의 모든 규모에서 동일한 패턴, 자기-유사한(self-similar)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응 원리의 다른 부분은 우리 현실도 본질적으로 프랙탈이라는 것입니다. 프랙탈은 자기-유사한 수학적 패턴입니다. 우리는 이를 피보나치 수열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자연계 전반에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원자의 구조를 보면 태양계의 구조와 비슷하며, 이는 은하계의 구조와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며 비슷하게 보입니다. 충분히 멀리 물러나면 같은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래서 우주는 부분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존재의 모든 규모에서 프래탈이거나 자기와 유사(self-similar)적입니다.
3. 성별의 원리. 성별은 모든 것에서 남성과 여성 구성 요소로 존재한다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인간의 뇌, 의식, 세계관 등에서 모든 존재의 모든 수준에서 성별이 존재함을 보았습니다.(다른 강의나 영상에서 이야기 했던듯 싶습니다.) 영적, 정신적, 물리적으로 모든 곳에서 성별이 존재합니다. 매우 간단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언급하려는 것은 정신적인 성별입니다. 정신적 성별은 남성적 여성적 측면의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뇌의 생리학적 분석을 살펴보면… 적어도 뇌의 높은 차원 부분인 뉴로코텍스에서 말이죠… 우리의 왼쪽 뇌 반구는 주로 남성적인 마음 측면을 용이하게 하며 지성, 논리, 분석적 사고, 선형적 사고 과정을 포함합니다. 반면 오른쪽 뇌 반구는 주로 여성적인 측면 또는 직관을 용이하게 하는데, 이는 창의성, 동정심 및 전체적인 사고 과정을 의미합니다.
4. 진동의 원리는 단순히 휴식이나 정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죽음은 모든 움직임과 에너지의 중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서나 모든 것이 완전한 휴식에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원자조차도 휴식하지 않고 움직입니다. 특히 원자의 전자 구름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를 깊게 들여다보면 무작위로 보이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충분히 강력한 현미경으로 그 중 어떤 것을 확대하면 모든 것이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을 볼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휴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진동합니다. 본질적 레벨에서 우주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진동 에너지이며 다양한 방식, 다른 주파수, 다른 진동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주는 진정한 고체성이 없으며 대부분의 수준에서 물질은 그저 진동 상태의 에너지에 불과합니다. 현재 많은 과학들은 결국 이를 이해하고 이 지식을 대중에 전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경험을 얻고 의식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진정한 고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으로서 인간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우주 전체는 고체 경험을 위해 존재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5. 극성의 원리는 모든 것이 그것만의 이중성을 갖는다고 명시합니다.
모든 것에는 극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극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자신의 반대 요소가 있습니다. 반대 요소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정도의 다름입니다.(같은 본질이라는 스펙트럼 안의 다른 정도치)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은 정말 반대인가요, 아니면 그냥 열 에너지의 존재 또는 열 에너지의 부재로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이것들은 동일한 것입니다. 동일한 에너지이며, 특정 영역에 열 에너지가 집중되어 뜨거워지던지 부재하여 차가워지는 차이입니다. 본질적인 레벨에서는 뜨거움과 차가움은 동일한 것입니다. 에너지의 존재와 부재입니다. 마치 트리비움(삼학)의 세 단계처럼, 우리의 지식과 무지도 동일한 것입니다. 네, 사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것이 수용되고 처리되는지 여부의 문제입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정도만 다릅니다. 극단은 만나고 혼합되며 서로 함께 놀고, 마치 음양의 상징처럼 작용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혼합되어야 하며, 어떤 수준에서는 모든 모순적인 것들이 조화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수준에서는, 통합된 영역 수준(우주의 합일 필드 수준)에서는 모든 것이 의식, 순수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이 수준(일반적 수준)에서는 의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레벨에서는 이해해야 할 것들이 있고, 바로잡고 고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네, 모든 모순은 어느 수준에서든 조화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로는 가능합니다. 이 물질세계에서는 물리적인 영역에 발을 디딘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6. 리듬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바깥으로 흐르고 안으로 흐르며, 모든 것은 그것만의 조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승하고 하강합니다. 모든 것에는 그것만의 리듬 또는 그것만의 스윙(흔들림)이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경향(리듬)이 존재합니다.
진자의 흔들림을 보면 우리가 겪는 모든 것,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오른쪽으로 흔들릴 때, 왼쪽으로 흔들릴 때의 크기는 같아요. 이것은 마치 반대와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균형을 이루어요. 리듬을 그렇게 보상을 합니다. 이것이 리듬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자연에서 에너지의 경향이라는 것이 어떤것인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연 법칙에 대해여 이야기 할때 리듬의 원칙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은 그냥 이렇게 움직이는것 같아 라고 말할것입니다. 그냥 조류에 따라서 밀려가고 밀려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리듬대로 결과가 고정되어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헤르메스 주의에서 이러한 법칙, 원칙에 대한 가르침 중 하나가 더 높은 수준의 의식에 의해 이것(결과)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 중 하나인 리듬은 어떤 것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극복)을 유전자에 연결해 봅시다. 새로운 생물학을 살펴보면, 현대 생물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 유전자를 활성화/비활성화 시키고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배가 바다로 나가려면 바다의 조류를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파도와 물결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만약 그 조류가 강하게 밀려 들어올떄 배를 띄우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류가 바다로 흐를때 배를 띄우면 훨씬 더 쉽게 배를 띄울 수 있고 노를 젓기도 쉬울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바람이 비행기를 밀어주면 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도착지에 더 빨리 도달하게 됩니다. 바람의 에너지가 비행기의 움직임에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날아간다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성향, 경향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단지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뿐입니다.
현재(이 시대) 우리는 에너지들이 잘 흐르지 못하는 경향안에 놓여 있습니다. 썰물의 시대입니다. 이 말은 정말로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향에 저항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이것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시기에는 의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고 의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훨씬 더 적은 에너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기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칼리 요가 또는 어둠과 파괴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의식의 흐름이 가장 많이 저항하는 지점이며(저는 이것을 출렁이는 그래프로 보자면 한 운동의 사이클에서 최저점의 좌표가 있는 부근들이라고 이미지화해서 생각했어요. ^^), 우리가 누구인지(순수 의식)에 맞지 않는 오래된 믿음 시스템들을 분해하는데(비워내는데) 거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과 결과, 카르마의 원리에 대한 내용은 이 영상에서는 안나와요. 아마도 카르마에 관한건 영상 하나로 따로 나오지 싶어요. ^^ 시난 나는대로 또 이와 관련된 영상 번역해서 올릴게요. 흥미로운 내용이너무 많고 우리가 여기저기서 얻었던 쪼가리 지식들을 하나로 모아서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기독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예수, 마태복음 7:12)
시크교: 나는 아무에게도 낯선 이가 아니며 아무도 나에게 낯선 이가 아니다. 사실 나는 모든 이에게 벗이다. (구루 그란트 사힙, p.1299)
이슬람교: 너희 중 하나라도 진정한 믿음자가 되려면, 너희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바라야 한다. (성자 무함마드, 하디스)
조로아스터교: 나에게 해로운 것을 다른이에게 하지 말라 (세야스트-나-세야스트 13.29)
힌두교: 이것이 의무의 요약입니다: 나에게 고통을 일으킬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마하바라타 4:1517)
불교: 나에게 해로운 것으로 여길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우다나-바르가 5.18)
유대교: 당신에게 미움이 되는 행동을 당신의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주석에 불과하다. (헤일렐, 탈무드, 샤밧 31a)
자이나교: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세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대하라. (마하비라, 수트라크리탕가)
도교: 당신 이웃의 이득을 자신의 이득으로 여기고, 당신 이웃이 손실을 자신의 손실로 여겨라. (T'ai Shang Kan Yimng P'ien, 213-218)
올해 타 카페에 올렸던 글들을 정리하여 제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중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 빛부스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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