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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빛을 찾는 여행/나의 경험, 나의 앎

감정을 비운다는것 (용서한다는 것, 배웠다는 것.. 모두 같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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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님께 답글을 쓰다가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하나의 글로 만들었습니다.

단지 이 글은 XXX님께 이야기 하는 마음으로 적은 글이니 이점 이해해주세요. ^^

(제가 글의 길게 늘여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댓글창의 글을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어떤 감정을 꾹참는 것이 바로 억누르는거예요. 그러시면 이 에너지들이 내 안에서 풀려나가지 못하고 고여서 맴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것들이 쌓이면 결국 정신적이던지 신체적이던지 병증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아주 흔한 우울증이 있을것 같고요.. 또 신체적으로 보자면 결국은 암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유명하신 영성가들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결국 놓아주기, 용서하기, 비워주기,등으로 귀결이 되고 그 테크닉들은 각각 모두 다를 수 있어요.. 명상 역시 같은 맥락이예요. 집착이라고 하는것이 이 에너지들을 놓지 못하고 내가 움켜잡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시면 될것 같아요. 또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하자면 그 어떤것도 못놓을 것이 이 세상에 없다고도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생각과 감정을 연결시켜서 그것이 나의 우주에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창조되는) 내용이잖아요. ^^ 잘 생각해보면 거기에 답이 있는데요 내 무의식에 저장을 하려면 생각만으로는 안되고 감정이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거예요. 그럼 무의식이라는 내 우주안에 기억으로 저장이 되는데... 그것들이 업, 카르마예요, (높은 경지의 스승들은 그래서 비우라고 하시지 욕망을 끌어당기라고 하지 않아요.) 그 기억들, 업, 카르마들이 일종의 패턴화된 프로그램이 되어서 나의 삶을 창조해요.

뇌과학으로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가 연결되어서 무의식의 (생각, 행동의) 패턴화가 완성 되었다로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이 에너지(보통은 감정, 생각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부정적인 에너지예요) 비워낸다는것은 이 생각과 감정이 연결된 시냅스를 끊어내시는거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사설이 정말 너무 길었죠~ ㅠㅠ)

(에고라는것, 개체 자아라는 것이 뇌의 시냅스 연결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어제 우연히 본 영상에서 설명이 잘 된 부분이 있어서 그것도 첨부합니다. 제가 과학얘기도 좋아해서 과학자들끼리 굉장히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거 보는것도 좋아해요.)

 

드디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감정의 폭발이 일어나면 나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또 다른 업으로 남게 돼요. 인생에서 나타나는 한 사람 한사람이 각각 생각과 감정으로 얽혀있기때문에 당연히 개별적인 업들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분노하고 다툼으로 끝맺는 상황이 있다고 해보면요..

우선 집에와서 작게는 같이 있던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부터 시작해서 왜 화를 참지 못했을까 자책하기도 하고 화를 나게 한 지인을 탓하기도 하며 왜 내가 옳고 그 사람이 그런지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고 온갖 감정에 시달릴거예요. 만약 격렬한 감정과 생각이 연결 되었다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완성되었다고도 설명할 수 있고요.. 뇌의 시냅스가 연결되어서 패턴화 되었다, 혹은 무의식에 저장되었다고 봐야할것 같아요. 모두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예요.

(아무리 나는 괜찮다 내가 옳았다 스스로 세뇌해봤자 우리의 뇌 혹은 우리의 우주는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 우주는 거짓말이 불가능하고 어떠한 규칙에 의해서 저장된다고 보시면 돼요. 이건 인간들이 만든 규율이나 법, 옳고 그름에 의해서 작동하는게 아니고요 순전히 양심에 의해서 작동해요. 양심은 느낌으로 저희에게 알려주고 교육시키는데요 그중 하나가 고통이예요,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그 감정을 비울때까지 거기에 박혀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헤석할 수 있어요. 그럼 왜 카르마는 되돌아올까를 생각해보면 이 감정들을 비울 기회를 다시 주는 거예요. 그 감정을 처리할 가장 귀주한 타이밍이 그 감정이 올라왔을때거든요. 그런데 만약 그냥 감정대로 행동을 했다고 한다면 그냥 나의 업/저장된 패턴대로 행동했다고 볼 수 있어요. 삶의 패턴을 바꾸고 싶다면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을때 다르게 반응하셔야해요. 긍정적으로요..)

그래서 저는 반응하지 않기가 현재 가장 큰 과제물이예요.

(제가 아직은 숙련이 안되어서 에너지를 끊어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연쇄적인 생각들의 고리를 미연에 차단하려고해요)

마하리쉬의 명언을 참조한 방법인데요.. ^^

생각을 포기하는거예요. 상황이 일어나면 그 즉시 생각의 맥락을 끊어내는거예요.

머릿속에서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침묵하도록 명령을 하는거예요.

아주 사소한 예를 들자면 가족이 나에게 잔소리를 해요. 그럼 나는 패턴화된 방식으로 짜증이 나고 반항하는 말을 내뱉는 상황으로 갈 수 있어요. 서로 기분도 나쁘고 나쁜 감정만 쌓여요. (업을 주고받는 상황이예요.) 그때 제가 생각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는거예요. 포기하는 즉시 머릿속이 침묵으로 들어가요. 머릿속에서 말하는 애가 조용해져요. 꼭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나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번 보세요. 고요한 가운데 감정이라 불리는 느낌만이 남게돼요. 그 느낌이 머리부분에서 일어나기도하고 가슴에서 일어나기도하고 명치에서 일어나기도하고요 몸의 여기저기에서 산발적로 일어나기도하고 한곳에서 나타나기도해요. 에너지가 거기에 고여있는거예요. ^^ (찾았다 요놈! 이렇게 되는거예요.) 그럼 그 에너지들이 뭘 하는지 들여다 보는거예요. 그 에너지의 느낌이 어떤지 관찰하는거예요. 그럼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실체가 이놈들 이었구나 하고 나타나요. 여기서 중요한것은 이 에너지들은 "내"가 아니예요. 왜냐하면 비우면 사라지는 내가 아닌 어떠한 에너지예요. 그래서 그 느낌들을 마치 어릴떄 쪼그려 앉아서 개미의 일상을 관찰하듯 바라봐주셔야해요. 그 관찰이란 온 정신을 다 해서 느끼는 것이고요.. 충분히 관찰을 하고 나면 이 에너지들이 몸 밖으로 나가는데 그 즉시 알아챌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에너지로부터 풀려나신거예요. 시냅스가 끊어져요. 그게 자유예요. ^^

감정들의 폭발은 나의 내면안에서 홀로 일어나야해요. 폭발을 관찰하는 관찰자로 있으셔야해요. 즉 내가 감정과 동화되면 안되고요.. 감정을 하나의 객체로 보시는거예요. 느끼되 그게 내가 아님을 알고 보시면 돼요. 니가 나에게 붙어 있었구나 알고 그것을 느껴 보시는 거예요. ^^ 일종의 빙의체로 대하시면 돼요.

사소한것부터 시작해보시고 실험해보세요..

예를 들면 창피하거나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실험해 보셔도 좋고요.. 아니면 지금 짜증이나 작은 분노가 있다면 그걸로 연습해보셔도 돼요. 그게 명상이예요. 생각을 끊어낸다는게 어떤것이냐면.. 단순히 생각을 하지 말라가 아니예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서 감정을 동반하잖아요.. 그때 감정만 남겨두고 감정을 가져왔던 생각들, 기억들을 끊어내시는거예요. 그 후에 그 감정, 느낌만 남겨두고 관찰하는거예요. 자꾸 생각이 올라오면 스스로 말하세요. "저는 생각을 포기합니다."

신기한거는 생각을 차단하면 그 느낌이 죽을정도로 힘들지는 않아요. 고통스럽지만 생각과 연결되지 않은 고통은 견딜수 있어요.

충분히 느끼면 그 에너지가 풀려나가요. 안풀려났다면 풀릴때까지 느끼면 돼요. 하루에 안되면 몇일에 걸려서 하시면 되고요. 결국은 다 풀려져 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선 작은 감정을 가지고 시도해보시면 큰 감정도 어떻게 해야 풀려나가는지 배우실 수 있어요. 작은건 작은 노력으로 풀려져 나가거든요.. 방법은 같은데 단지 시간과 노력의 양이 다를 뿐이예요.

즐거움도 충분히 느끼면 풀려나가는것처럼 고통도 충분히 느끼면 풀려나가요. 내가 느끼기를 회피한 것들이 내안에 고여있는 에너지라고 보심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게 몸에 얼마나 많냐면요.. 한번 업을 주고받을때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생각 감정마다 점처럼 박혀있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분별하지 말라(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분별이라는것들이 전부 이 생각과 감정의 조합들이거든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 저장되는게 아니라 내안에 저장되는거예요. 특정 장기들과 감정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지는데요.. 욕망과 관련된 것들, 욕망에 실패했을때 좌절감, 질투 이런건 명치부분에 수도 없이 박혀있어요.


 

인터뷰어: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는 화를 느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 그래요. 그럼 여기서 누가 고통을 받고 있는건가요? 그 사람은 이미 떠났습니다. 그들이 했던 일들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내 마음이 화로 물들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시 상처받게 (다시 트라우머 상태에 머물도록)합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손에 뜨거운 숯덩어리를 들고 있는것으로 설명했습니다. 들고 있으면 내 손이 타버리겠죠. 만약 그 숯덩어리를 내려놓으면 손이 더 이상 타지 않을거예요. 용서란 내 짐을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해 분노를 느끼죠. 중요한 것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나 상황을 비난하는 대신 분노 그 자체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저에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감정들에게 어떻게 동정을 보내는지를 배웠을 때부터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살펴본다는 것은 감정에 붙어있는 스토리를 떼어내고 그 분노를 보는 것입니다. - 나는 이런 이유로 화가 나 있다거나 그 사람이 이랬기 때문에 화가 났다거나 하는 스토리들이요.

그리고 종종 몸으로도 느껴지는 일종의 격노, 내면이 불타는 듯한 느낌 혹은 차가운 느낌들을 느끼는 명상을 합니다.

당신이 스토리를 뗴어내고 그 분노에 집중하고, 그 느낌과 감정들을 떨쳐내려 하지 않고 그 상태를 느끼는 명상을 할 때, 변화가 시작되고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노 속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올해 타 카페에 올렸던 글들을 정리하여 제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중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 빛부스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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